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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임재연습 - 혁이네 란제리

하느님의 임재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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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6. 07.

그리스도인으로서 많은 이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이들이 참회나 그 밖의 특정한 훈련들에는 집착하면서 정작 그런 것들의 목적인 하느님의 사랑에는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성화(聖化)는 우리가 이런 일도 해보고 저런 일도 해보는 데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일이든 저런 일이든 우리가 흔히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해왔던 그 일들을, 방향을 돌려 하느님을 위해 하는 데 달려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기도는 다른 무엇도 아니고 오직 하느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것이었으며, 그 시간에 그의 영혼은 하느님의 거룩한 사랑 외의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다고 했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하고, 소망이 있는 자는 덜 힘들게 마련이며,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쉽다고 그는 말했다.

저는 스스로를 인간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자, 상처와 부패로 얼룩지고, 왕이신 분을 거슬러 온갖 종류의 범죄를 저지른 자로 여깁니다. 그 모든 일들에 회한을 느끼면서, 저의 사악함을 하느님께 고백하고 그분의 용서를 구하며 그분의 뜻대로 처분하시도록 저 자신을 그분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러나 자비와 선함으로 충만하신 왕께서는 저를 징계하시기는커녕 오히려 사랑으로 안아주시고, 당신의 상(床)에서 먹게 하시고, 그 손으로 친히 먹여주시고, 보배함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제게 주셨습니다. 그분은 수천수만 가지의 방법으로 쉼없이 저와 얘기 나누기를 기뻐하시고, 모든 면에서 당신의 은총을 받는 자로 대해 주십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저는 제 자신이 하느님의 거룩한 임재 안에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아주 잠깐 하느님을 기억하기만 해도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 가까이 계십니다.

기도중에 다른 생각을 하는 이유는 처음에 경건 생활을 시작할 때 묵상으로 생각을 충분히 가다듬지 못한 탓이 큽니다.

하느님 앞에서 기도할 때는 부자의 대문 앞에서 구걸하는 말 못하는 혹은 중풍에 걸린 거지처럼 잠자코 있으십시오.

주님의 임재 안에 생각을 고정시키는 것을 자신의 할 일로 삼으십시오.

기도 시간에 생각을 다잡아 평온하게 그 상태를 유지하는 한 가지 손쉬운 방법은 기도 시간이 아닌 때에도 생각이 너무 산만해지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친구를 사랑해야 하지만 하느님께 드려져야 할 사랑이 거기에 잠식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을 홀로 계시게 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자기를 찾아온 손님을 홀로 두는 것을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하느님은 그래도 된다고 여길까요?

그러므로 하느님을 잊지 마시고, 자주 그분에 대해 생각하고, 계속 그분을 찬양하고, 하느님과 함께 살고 하느님과 함께 죽으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이것이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그분과 더불어 고난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러한 고난에 익숙해지십시오. 그 고난이 아무리 크고 오래 되더라도 그것을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느님께 구하십시오.

그들은 질병에서 슬픔과 괴로움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질병을 하느님의 손에서 오는 것으로, 하느님의 자비가 나타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이 사용하시는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은 그 질병에서 오히려 단맛과 위로를 느끼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건강할 때보다는 병들었을 때 우리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더 가까이 계시고 더 효과적으로 우리 곁에 임재하신다는 사실을 신부님이 확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두신 상태에 만족하십시오.

어떤 경우든 우리 영혼이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는 일이 없도록 막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로 수일 안에 하느님을 볼 수 있는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hyeok.net/blog/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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