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 혁이네 란제리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도서

2020. 09. 26.

어떤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할 수 없고 하지 않을 일들을 짧은 오후와 밤 사이에 다 했다.

사람과 만나면 화가 난다. 상대방에 의해 내 말이 교정되어서다.

필사적으로 말한다. 계속 말한다. 그것이 나를 화나게 한다. 너무 많이 말했다. 아무 말도 안할 수 있었는데.

혼자가 낫다. 사람들과 있으면 속이는 거다. 솔직해져야 한다. 나를 견디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유일하게 금지하고 있는 건 자살인데 억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해된 채로 아무에게도 나를 읽히지 않은 채로 죽어질 수는 없었다.

인생 뭘까? 자살이나 하렴, 이라는 말을 무시하면서 안 들리는 척 하면서 인생이란 뭘까? 라고 묻는 것이다.

버텨, 견뎌 같은 건 웃긴 말이고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는 걸 우리는 팔십 세에 인정해야 했습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는 시도 같은 건 하지 말자. 되면 되고 말면 말고 하는 마음이 제일 소중하다.

저는 주말동안 제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월요일이 되어서야 제가 누구인지 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이 뭘까. 어떤 말은 사실이 아니어도 내가 '한'말이 되어서 힘을 갖고 타인을 설득한다. 마치 그것은 나름으로 사실이라는 듯이.

살아 있음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 이걸 스스로 과소평가했거나 측정해본 적 없으니까. 나는 에너지가 백 있으니까 그중 삼십이나 사십 정도를 나를 수정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거야, 믿고 싶어지죠. 하지만 대부분의 안 건강이들은 존재하는 것에 백을 다 써버려서 남은 힘이 없어요.

내가 어떤 재질의 옷을 구입하거나 착용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죽을 때까지라고요. 그런 경험 자체가 전무하다고요.

살아간다는 건 타인과 감정적 신호를 끊임없이 주고받는 일인데 그것이 가능한 사람과 그게 거듭 벽에 부딪힌다고 느끼는 사람의 현실은 다르겠죠.

사람들하고 같이 있으면 내가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부인할 수 없다. 혼자라면 내가 비정상이라는 사실에 간섭받지 않아도 된다.

제가 저인 것을 견딜 수 없어요. 모든 게 견딜 만하지만 짜증내려면 한없이 짜증낼 수 있다. 말할 필요 없을 때, 자격과 이유가 없을 때 말할 기회가 주어질까봐 두렵다.

'세상의 의미'라고 얇은 책등의 글자를 읽었는데 '내 삶의 의미'였다.

나는 네, 예, 대답하다가 언젠가부턴 웃기만 했다.

내가 왜 아, 좋아졌다, 하고 느꼈을까? 만약 못보게 되면 그땐 고통스러울 거 같아서였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네, 아무 증거도 안 남겼다, 누가 목격한 게 아니라면, 하고 생각했다. 흔적이 없는 일, 없던 일이었다. 글로 남기지 않는 이상은.

각자 무엇을 믿는지 생각하면 무서워진다.

취약성을 이야기해야 한다. 삶은 다양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그가 누구라도 타인에게는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누가 알려주면 좋겠다.

먼저 간 사람들을 조용히 질투하고 있었다. 나도 먼저 가는 사람이 되어야지.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인생은 힘겨운 균형을 요구하는구나. 행복했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요구하러 오는 것이 인생이네.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고통 받게 되는 것이 바로 삶이구나.

싸이월드 안 망했어요! 하는 싸이월드 광고 볼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고 인생 배우게 된다.

외로움을 해결하려면 외로움을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이 문장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는 고민 말아야 한다.

모임 끝 무렵에 목사님이 시편인가에 자기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며 말하길, 하느님이 나를 아주 무너뜨리지는 않으시리라, 했다.

그러나 그날에도 아직 내가 너희를 끝장내지는 않겠다. (예레 5,18ㄱ)

하지만 정말 나를 아주 무너뜨리지는 않으시는 것이 맞겠죠? 그렇다고 하여도 가볍게 무릎이 꺾이기만 해도 두렵고 무서운 것이 사람일진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만은 쥐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되고 싶은 모습에 도저히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나를 비난하며 그 자리에 머물도록 허락하는 핑계가 아니라 어둡고 혼자일 때 저 멀리 혼자일 때 희미한 빛으로 상상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하지 못하는 일을 생각하며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부족함이 있으면 그 부족함 안에서 할 일을 하면 된다. 다른 걱정은 결국 내가 아니고 싶은 불가능한 마음일 뿐이고 현실의 문제를 상대해주지 않는다.

이제 진짜 어쩔 수 있는 게 없구나! 슬프다, 아쉽다 같은 감정이 아니었다.

마음이 어지럽고 정리가 안 될 때는 간단한 일조차 의욕이 없어서 할 수가 없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가끔 의욕이 생긴다.

앞으로도 청소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고 그렇게 어질러둔 것들을 정리하는 기쁨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었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요. 그 조건을 누가 바꿔줄 수 있는게 아니었으니까. 아무도 그 조건을 만지거나 궤도를 이렇게, 길을 바꿔 여기로 가봅시다, 할 수 없었고 그것이 각자의 삶이었으니까요.

주거권은 자신의 사적 공간을 단순히 소유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공간에 타인을 초대할 수 있는 관계성을 의미한다. 내 공간에 남을 초대할 수 있는가? 고시원에 산다면 그것이 가능한가? 섹스가 가능할까?

누가 시민을 규정하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주는가. 성소수자 혹은 장애인에게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없다고 말하면서 이성애자들에게는 결혼하라고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는 정부.

관계가 평등하려면 언제든지 그 관계를 떠날 수 있어야 한다. 의존하고 있어야 하고 떠날 수 없다면 그 관계는 당연히 평등하지 않다.

'삼사십대에 큰 성공을 한 번쯤 하기는 합니다.' 나는 저 '하기는 합니다'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성공이라면 무엇이고 실패라면 무엇이랴. 무엇이 성공이고 실패일까? 선생의 말대로 저마다 할 일을 했고 제 몫을 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누구도 모르는데 왜 누군가는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자극하는 것들을 상대하거나 맞서면 안 되고 피해야 합니다. 책상에 물건 올려두면 고양이들은 앞발로 밀어서 떨어뜨리잖아요? 그럴 때는 고양이를 혼내는 게 아니라 떨어뜨릴 물건이 없게 책상을 정리해야겠죠.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고 다른 사람처럼 살 수도 없다. 다른 사람처럼 살 수 있더라도 나는 나처럼 살아야 하고 나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떡해, 그러면 안 돼, 같은 말을 안 듣고 싶다. 난 떠들기만 하고 아무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비어있다. 내겐 이야기가 있고 문제적이고 세상에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내가 비어있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예술가로서 주목받고 싶고 사람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고 나를 알아주었으면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영영 만족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소재도 될 수 없다. 그저 도구일 뿐이며 경험과 삶에 대한 태도는 너무도 얕다.

어떤 사람이 우리이고 어떤 사람은 친구가 아닐까. 사람을 시험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도 시험을 이겨낼 만큼 강하지 않으니까.

잠깐 있었던 일이 나도 남들에게 자주 하는 행동이면서 아직도 이렇게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런 곳에서 만난 주제에 관계라는 욕구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문제와 답이 확실한 세상에 살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가진 것도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돌처럼 단단한 것도 없다. 여기가 올바른 주소도 아니고 여기로 꼭 배달되어야 했던 우편도 없다.

바꾸지 못하는 조건이나 상황에 떼쓰지 말아야 한다. 그건 내가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 아니고 무력감을 강화하려는 충동일 뿐이다.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살아남아야 하지. 다들 견디지 못할 때조차도.

생각에 기대지 말고 벽이나 단단한 나무에 기대자. 호모라는 건 나의 작은 사실에 불과하다. 나는 왜 이 모양으로 살게 되었을까?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안 죽을 방법은 없다.

내가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만큼은 다른 사람들도 본다. 말을 안 할 뿐이지.

못하면 못하는 거지 뭘 어떻게 해.

어떤 사람이 대단하면 아 대단하구나, 하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지.

소수자로서 살아가면서 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을 파악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무시하는 일은 중요했다.

일부 게이 남성에게 만남의 통로가 되는 어플 혹은 사우나 등의 공간에서의 문법은 그에게 관계의 형태와 질을 결정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이성애자와 달리 아직은 제한적인 선택지 안에서 친밀함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시대와 사회, 공간의 한계를 자기 정체성의 문제로 바라보게끔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이렇듯 차별과 불평등은 개인의 특성이나 문제행동의 결과처럼 보이도록 강제된다. 구조적 취약성을 소수자 개인이 떠안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세상에서 그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다수에게 늘 '비용'이라는 부담으로 인식되어 변화를 저지시킨다. 소수자 개인이 처한 환경의 선택지를 다양하게 만들지 못하면 그는 동일한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게이로서 마주하는 차별과 혐오의 맥락은 복잡하게 얽혀있고 그 모두를 세심하게 풀어낼 끈기와 능력이 내겐 없지만 나 개인의 이야기는 할 수 있다. 나는 삶을 이야기하고 그걸 이해하는 방법으로 이 글을 쓴다.

우리는 누구와 섹스하든 나 자신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건강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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