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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의 분리 - 혁이네 란제리

과제의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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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7. 24.

아이가 공부를 하는가, 하지 않는가. 혹은 친구와 놀러 가는가, 가지 않는가. 원래 이것은 '아이의 과제'이지 부모의 과제가 아닐세. 아이 대신 부모가 공부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지 않나?

공부하는 것은 아이의 과제일세. 거기에 대고 부모가 "공부해"라고 명령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에, 비유하자면 흙투성이 발을 들이미는 행위일세. 그러면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지. 우리는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네.

타인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그것뿐일세.

모든 인간관계의 트러블은 대부분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는 것─혹은 자신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해 들어오는 것─에 의해 발생한다네. 과제를 분리할 수 있게 되면 인간관계가 급격히 달라질 걸세.

누구의 과제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네.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만약 아이가 '공부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을 했을 때 그 결정이 가져올 결과 ─이를테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지망하는 학교에 불합격하는 등 ─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어야 하는 사람은 부모가 아니야. 아이란 말이지. 즉 공부는 아이의 과제일세.

세상 부모들은 흔히 "너를 위해서야"라고 말하지. 하지만 부모들은 명백히 자신의 목적 ─세상의 이목이나 체면일지도 모르고, 지배욕일지도 모르지 ─을 만족시키기 위해 행동한다네. 즉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고, 그 기만을 알아차렸기에 아이가 반발하는 걸세.

여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네. 아들러 심리학은 방임주의를 권하는 게 아닐세. 방임이란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라네. 그게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켜보는 것. 공부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이 본인의 과제라는 것을 알리고, 만약 본인이 공부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를 전하는 걸세. 단 아이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말아야 하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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